선의의 기부자가 세금 폭탄을 맞지 않도록 증여세법이 개정될 전망이다.
26일 기획재정부는 최대주주가 주식지분 5% 이상을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거액의 세금을 추징하는 증여세법을 오는 7월 개정할 계획이다.
주식 180억원 어치를 기부한 황필상씨에게 증여세 140억원을 추징한 것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증여세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에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구원장학재단이 수원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장학재단에 주식을 기부하는 것이 현행법상 무상증여에 해당해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되는지를 두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자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기획재정부는 대법원이 선의의 주식기부에 과세는 부당하다며 황씨 손을 들어주면서 정부가 23년 만에 제도 손질에 나선 것이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 세제실은 지난 20일 대법원 판결 직후 비공개 전문가 회의를 열고 관련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검토에 착수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황필상 씨처럼 선의의 기부자에 대한 구제의 필요성을 감안해 어떤 형태로든 보완이 필요하다”며 “정기국회로 갈 사안이기 때문에 올해 세제개편안을 발표할 때 함께 넣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르면 7월 관련된 ‘2017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재부가 개정 검토에 착수한 내용은 1994년부터 시행된 ‘5% 룰’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16·48조)에 따르면 최대주주가 공익법인에 기업의 기부할 경우 주식 5%까지만 세금이 면제된다. 5% 넘게 주식으로 기부하면 초과분에 대해 최고 50%의 증여세를 물린다. 대기업 오너 일가가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재산 세습을 위해 기부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다.
국회도 올해 정기국회에서 이를 다룰 예정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법 판결 취지에 맞게 세법 손질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선 면밀히 보겠다”고 말했다. 편법 증여와 선의의 기부를 구분할 기준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앞서 지난 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청회 등에서 ‘5% 룰’ 개정 논의가 진행됐지만 부작용이 우려돼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 '황필상 판결'로 본 공익법인 5%룰 개정 쟁점은
과세 상한선인 5%의 적정성 여부.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률 개정안을 보면 강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실 공익법인제도를 폐지하고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쪽이다. 현재 공익법인은 5%까지 비과세지만 성실 공익법인은 10%까지 비과세다. 성실 공익법인은 운용 소득의 80% 이상을 공익 목적 사업에 직접 사용하거나 출연자 또는 특수관계인이 공익법인 등의 이사 정원의 5분의1을 넘지 않아야 하는 등 공익법인보다 조건이 더 까다롭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상한선을 현재 5%에서 20%로 대폭 확대해 기부를 장려하는 대신 출연 받은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자는 입장이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익법인은 상한선을 5%에서 10%로, 성실 공익법인은 10%에서 20%로 올리자는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20% 상한선은 공익법인의 주식 출연 기준이 강화되기 이전 기준이다. 현재 해외의 경우 미국은 20%, 일본은 50%가 상한선이다.
공익법인 특수관계인의 범위도 논란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도 특수관계인이냐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출연자가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지는 출연자가 재단의 정관 작성과 이사 선임 등에 관여했는지 등을 따져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특수관계인의 범위는 본인과 친족 관계, 경제적 연관관계 또는 경영지배관계 등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황씨의 경우 주식을 기부한 것 외에 정관 작성이나 기명날인 등을 하지 않은 점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현행법이 5%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과세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를 강제조항으로 봐야 하는가, 임의조항으로 봐야 하는가가 문제다. 과세 당국(수원 세무서)은 법에 따라 과세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에 문제가 있다면 이의제기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과 선의의 기부의 경우 법의 취지를 살려 융통성을 발휘하면 된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만큼 5% 룰 제도 개선에 대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선의의 기부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법을 다시 들여다보고 개선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이 실제 개정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법원 판례를 통해 과세 당국이 관련 법을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만큼 법 개정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재벌들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법 개정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